잡담

징병제와 함께 무너지는 국방부, 한국의 남자는 소모품이다.

봐물리 2017. 4. 17. 17:09



현역 장병으로 입대할 20대 남성 인구 절벽-

 오늘 뉴스를 봤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입대할 자원이 부족해지고, 이에 대해 국방부는 사회복무 요원과 기타 불필요한 의무제도를 없에고, 예비군 민방위 훈련 강화와 신검을 통해 현역비율을 높이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간단한 해결책은 없는걸까. 한숨만 나왔다. 아마 미래의 대한민국은 땅을 뚫어 지옥까지 추락할 것이다.


Ⅰ.아무도 원하지 않는 애국은 누가 시키는 건가?

 국가 3요소에 포함된 군대라는 조직은 국가를 구성함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영토와 국민을 지키며 자국의 경제발전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요소, 대한민국은 작은 영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육군 전력이 세계 상위권이 위치한 군사 강국.  주변의 열강에 비할바는 못하지만, 적은 자원과 한정된 시간으로 이만큼의 성과를 낸 것은 대단하다고 본다. 최근에는 국산 자주포 k-9이 핀란드 등 유럽과 서아시아에 수출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작은 나라에서 이만큼이나? 한강의 기적이라고도 불리우는 50년간 경제성장은 가히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는 어디서 온것일까.

군인이라는 직업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어렵고 힘든 일이라 봉급을 제대로 주는 국가에서도 왠만하면 기피하고픈 직업이다. 그래서 모든 국가에서는 그에 합당한 보상과 복지혜택을 제시하며 군인이 되기를 희망한다. 왜냐하면 국민 중 일부가 자유를 포기하고 군인이 됨으로서 국가는 경제,복지,사회의 모든 이익을 실현시킬수 있기 때문이다. 군인이 없다면? 나라의 안정성이 떨어지게 되어 투자자는 전부 빠져나가 주식은 바닥을 칠 것이고, 주식이 바닥을 치면 회사가 망하고,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국민은 다른나라로 이주하거나 난민이 될 것이다. 한국전쟁이 생각나는가? 일제강점기가 생각 나는가? 군인이 없어 적은 파죽지세로 쳐들어오고 국민은 도망가다 폭격을 맞아 가루가 되며, 마을사람은 한곳에 모여 학살을 당한다. 남자는 원하지 않는 나라의 노예와 병사로 살다 죽으며 여자는 성노예가 되어 고통받다가 자결한다. 그만큼 군인의 중요성은 몇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 군인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낀 대한민국은 지금,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군대에서 희생당하기 싫다는 생각이 가득차있다. 무려 나라가 빼앗기고 분단되는 뼈아픈 역사를 학습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그럼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첫째,어느 누구는 군병원에서 치료를 잘못받아 실명을 당했다. 하지만 국가에서 돌아온건 군의 책임이 아니다라는 국가보훈처의 문서뿐이다. 둘째, 얼마전 목함지뢰로 발목을 잃은 모 하사는 자비로 자신의 신체를 치료했으며, 이 사건을 위로하기 위해 국가가 아닌 사기업의 도움으로 발목 동상을 만들었다.이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자 국방부는 부랴부랴 대처를 한다.  결국 군대는 개인에게 책임감을 강조하지만 정작 국방부 자체는 책임감이 없다.

 한가지만 설명해본다. 형법에는 인과관계라는 것이 있다. 그 사람이 칼로 찌르지 않았다면 안죽었을 텐데, 찔러서 죽었는데, 누가 ~을 해서 ~가 발생했는데. 마찬가지로 군대에 가지 않았더라면 ~하지 않았을 텐데. 군대에 가지 않았더라면 죽지 않았을 텐데, 가지 않았다면 다치지 않았을 텐데, 자살하지 않았을 텐데 등등...이런걸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어린아이에게 한글이 뭔지 가르치는 것 같아 우습긴 하다. 군대에서 발생한 사건은 전부 군대에서 책임져야하는게 일반인이 생각하기에 당연한 사실이자 진리이다. 하지만 봐라. 당연한 사실이자 진리는 국가는 헌법에 명시된 이중배상금지를 들먹이며 무시하고 있다. 그래 여기까지는 그럴수도 있겠다 하자. 그런데 이게 끝이다. 무슨소리냐고?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야하는게 정상이다. 어떤 잘못된 무언가가 있으면 그것을 고치거나 수리해서 정상으로 만드는게 제대로 돌아가는 조직이다. 이중배상금지제도로 인해 한 사람 한사람이 자유를 빼앗긴 대가로 고통을 받고 살고있다면 이걸 고치는게 우선이고, 그런 태도를 보여줘야 하는 게 맞지 않은가? 국방부에서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표명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오히려 사기업에서 발벗고 나서 치료비를 지원해준다. 한번도 아니고 몇십년간 계속되는 상황이다. 이쯤되면 제도를 이용해 먹고 있다는 게 맞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전쟁이 나면 싸워 줄 젊은이들, 혹은 미래의 장병이될 남자들, 혹은 미래에 아이를 가지게 될 부모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까? 이나라는 군인을 다치거나 죽으면 바꿔끼어서 쓰는 '부품'쯤으로 취급하는구나. 내가 징집이 되면 저런 꼴을 당하는 구나. 내가 아이를 가져 그 아이가 징집이 되면 저렇게 되겠구나. 이 나라에 전쟁이나서 동원령이 떨어져 참석하게 되면 나는 저런 취급을 받는구나. 징집을 피하는 방법이 없을까. 이민을 생각해 볼까. 남자아이를 낳으면 다른나라로 가볼까. 이미 옛날의 '군대가면 남자'라는 쌍팔년도식 애국은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오히려 그들의 가슴속에는 강제로 쑤셔넣은 애국이 비뚤어져있다. 

결국 이들에게 있어서 애국이란 것은 누군가 시켜서 하게 되는 것이다.


Ⅱ.민주주의와 징병제 그리고 인권, 애매한 경계

 대한민국에 이뤄낸 것들 중 징병제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것은 단 한개도 없다. 삼성 엘지를 비롯한 자국에서 태어난 기업들, 자영업자, 행정기관, 사법기관, 길거리 돌아다니는 노숙자 등 하나도 빠짐없이 대한민국의 안전한 영토에 기반하여 성장하고 이 나라의 모든 국민은 징병제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국가에 기반하여 민주주의가 만들어 진 것은 당연한 사실이고, 이것들은 징병제를 거쳐간 우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아저씨와 형이 만들어 낸 결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현대화가 되어가고, 개인인권이 더욱 중요해진 지금, 한국에서는 이제 군대라는 조직은 급하게 꿔다놓은 당나라 군대가 되어가는 중이다. 이것은 의식의 변화가 가장 크다. 무한 경쟁시대에 진행되는 사회속에서 2년 가까이되는 시간의 피해는 말로 표현할수 없을 뿐더러, 빈부격차가 심해짐에 따라 빈곤한 가정의 아들들은 죽지못해 강제징용장으로 끌려간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 징병되는 이들에게는 민주주의는 지켜야할 동시에 빼앗겨야할 존재인 것이다. 남자는 태어나서 자유를 빼앗기고 자유를 지킨다.

대한민국에서 이 공식이 성립하는 이유는 보상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자유라는 객체를 빼앗았으면 그에 따른 보상이 뒤따르는 게 당연지사. 하지만 자유를 희생하고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으니 자유를 빼았기고 자유를 지킨다는 말이 된다. 대한민국의 징병제는 국가와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막대한 책임감을 지니게 하면서 무일푼으로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50년만에 이뤄낸 경제대국이란 타이틀을 걸고 있는게 참 우습게 들릴 뿐이다. 남한테 뺏어가다 자기집 대문짝에 걸어놓는 꼴.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 할 수도 있겠다. '나라를 지켜야 지금의 너와 가족이 산다. 그러니까 군대에 가는 것은 어쩔수 없다'. 맞는 말이다. 나라가 유지되어야 사회가 유지된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너는 이 나라에 살려면 일단 강제로 징병되어야 한다. 이건 나라를 지키는 거니까 당연한거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멀지 않다. 100년도 안된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에게 동원령을 선포하며 한 말과 비슷하다. '조선인과 일본인은 동등하다. 그러니 일본인과 동등해 지려면 같이 병사가 되어 이 나라를 지켜라'. 대한민국에서 국민으로 살고 싶으면 뭐해라? 징병되어라.지금의 징병제가 무조건 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군국주의시절 열강과 똑같다. 물론 현대화된 군 조직에 비할바가 있겠냐만은 이 사실은 유일하게 대한민국 국민 중 20대 남성 일부만이 과거로 돌아가서 인권을 유린당하는 일제시대를 살고 있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지금까지 내가 본 재판중에서 명백하게 잘못된 판결은 딱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하려고하신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을 불문법 핑계를 대며 위헌심판을 한 2004년도 재판이고, 또 하나는 공무원보수규정 제5조 중 군인 봉급에 관한 헌법재판이다. 헌법 재판소는 징병제 봉급에 대한 심판한 적이 있다.  봉급에 관한 문제인데 '군대생활을 하면서 부대비용을 국가에서 제공해주니 현재의 징병제도는 정당하다.' 란다. 실로 어이가 없는 판결이다. 요즘에는 자신감을 얻었는지 뉴스에 얼마간 '군인 1명당 국가비용 한달에 400만원 가량의 유지비용이 든다'라는 헤드라인이 몇개월이고 걸려있었다. 같은 논리로 일제시대에도 옷가지와 음식을 제공했으니 강제징집된 피해자들은 보상금액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이건 지금까지 내가 본 재판중에서 명백하게 잘못된 판결 중 하나이다. 사실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재판이라는 것은 민주주의의 꽃이며 그 나라를 대표하는 기관에서 나온 결과이기도하다. 분명 합의체에서도 현재의 징병제도가 인권침해요소가 가득하며 비민주적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위헌심판을 하자니 국가사정이 따라주지 않을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이러한 태도는 현재의 징병제가 잘못된 건 맞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시기상조설'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도 애매하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징병제는 있어야하지만, 당장 보상제도는 고칠수 없다. 만약에 위헌을 때리게 되면 사회를 유지할 수 없는 격변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생각해서 전원일치 합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인간적으로 살가가기 위한 자유를 빼앗았으면, 그곳이 감옥이 아닌 이상은 보상을 주는게 맞다.

 같은 자유를 빼앗더라도 징역과 징병의 차이는 만들자.


Ⅲ. 해결방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현재 징병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하는 노력은 무엇일까? 글을 읽고 계신다면 대통령 대선공약 중 전역자 보상문제에 대해 거론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없다. 지금 생각나는 국회의원 중 전역자 대우나 징병제에 관해 입법을 추친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보자. 없다. 애초에 징병제 자체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관심조차 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요즘 핫한 여성인권에 대해 알아보면, 여성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과 많은 정부기관이 동참해주며 의견을 받아들이는 창구도 상당히 다양하다. 따라서 받아들이고 정책에 반영하는 루트도 정형화 되어있고 불만은 그때그때 받아들여 국회에 들어간다. 수많은 국회의원이 여성복지와 여성처우문제를 거론하며 토론하고 입법과 개정을 반복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남자의 복지나 징병제에 관해 문제를 토로할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없다. '그러면 시위라도 해야지!' 안타깝게도 헌법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혼자 머리박고 쓰러질 은혜 갚은 까치는 없다. 이미 국가적으로 징병제를 못 박아 놓았기 때문에 보상문제라거나 징병으로 인한 인권 문제라거나 아에 거론되질 않는다. 국회의원도 관심이 없다. 잠깐 이슈가 되면 그때서야 언급이라도 해주면 다행이다. 혼자서 징병제는 부당하다라고 소리쳐도 그 뿐이다. 거기에 동참해봤자 헌법재판소가 단칼에 잘라놨기 때문에 소용이 없다. 이러한 사회의 태도는 남자는 죽거나 다쳐도 상관없다는 스텐스인 것. 남자의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렇게 되도록 정해진것이다. 하물며 일본인 작가 사야카 마저도 복지 사각지대인 남자를 두둔하며 책까지 쓸까.


생각을 해보면 간단하다. 징병제 실시 이후, 인권을 침탈하는 징병제 위에 사회적 기반을 쌓으며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복지정책을 이행하고 있는 이상한 구조이지만, 징병제는 너무나 당연한 착취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문제를 인식하기 힘든것도 한몫한다. 정치인이라면 알고있어야만 아무도 먼저 알려고하지 않는다. 이미 사회속 깊은 곳에 이것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비민주적인 행위라는 것을 모두 망각해버렸다.


Ⅳ.필자의 경우

 작성자는 2012년도 gop에서 복무를 마치고 14년도에 전역을 했다. 입대 당시엔 징병제의 문제점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군생활도 괜찮았다. 많은 인연이 있었으며 전국 각지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친분을 쌓고,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훈련을 같이 견디며 전우애라는 것도 알게 해주었다.그 사람들 전부 나의 소중한 동료였으며 좋은 인연이었다. 이때까지는 그냥 거쳐가는 관문쯤으로 생각했다. 나의 생각이 바뀐 건 전역 후의 상황이다. 전역 후 집에 도착했을 때 내가 느낀건 허무함과 배신감이었다. 내가 없는동안 가정을 유지하려고 무리하게 일을 하던 어머니는 암과 척추수술로 침상에 누워계셨으며, 아버지 또한 암센터에서 배에 프라스틱 관을 여러개 끼운채로 나를 맞이했다. 더불어서 부모님의 얼굴에 내가 모르는 흰 머리가 늘어난 것과 내가 모르는 주름살이 늘어난 것은 지나간 시간을 체감하게 해주었다. 내 머릿속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군대에 가지않고 계속 집에 있었다면, 내가 일을해서 돈을 벌었을 것이며,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존재했을 것이고, 가족은 병에 걸리지 않고, 적어도 지금상황보다는 나을것일 텐데. 하지만 돌이킬수 없는 시간이었고, 현재의 상황에 대한 보상은 내 통장에 남아있던 백만원 남짓한 '국군복지단'에서 입금된 푼돈이 전부였다. 나는 시간이 그렇게 소중한 것인지 몰랐었다. 그 즈음 개봉한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며 주인공인 아버지의 감정에 공감이 많이 되었다. '2년 그까짓거 걍 갔다오지' 내 다짐은 현실보다 너무 안일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같이 하지 못한 시간이 되풀이 되어 책장을 두들기는 주인공마냥 후회와 슬픔을 주었다. 그리고 복무중 먼저 세상을 떠난 동기들도 다시 생각나서 그날 밤은 혼자 술을 마시며 잤던 기억이 있다. 침대에 취한 몸을 뉘이고 베개에 머리를 박으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나는 국가를 지켰지만 국가는 가족을 지켜주지 않는다. 그리고 군대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군인은 소모품이다. 남자는 소모품이다. 나는 소모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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